낭송 향연 206

사평역에서 - 곽재구 (낭송/조정숙)

[영상.낭송시] 사평역에서 - 곽재구 낭송/조정숙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 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낭송 향연 2020.03.16

자화상 - 서정주 (낭송 조정숙)

자화상 - 서정주 (낭송 조정숙)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빛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낭송 향연 2020.03.10

연가 - 정일근 (낭송/조정숙)

연가 - 정일근 (낭송/조정숙) 연가 - 정일근 허락하신다면. 사랑이여 그대 곁에 첨성대로 서고 싶네 입 없고 귀 없는 화강암 첨성대로 서서 아스라한 하늘 먼 별의 일까지 목측으로 환히 살폈던 신라 사람의 형형한 눈빛 하나만 살아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일년 삼백 예순 닷세를 그대만 바라보고 싶네 사랑이란 그리운 사람의 눈 속으로 뜨는 별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저마다의 눈물로 반짝이고 선덕 여왕을 사랑한 지귀의 순금 팔찌와 아사달을 그리워한 아사녀의 잃어버린 그림자가 서라벌의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로 떠오르네 사람아 경주 남산 돌 속에 숨은 사랑아 우리 사랑의 작은 별도 하늘 한 귀퉁이 정으로 새겨 나는 그 별을 지키는 첨성대가 되고 싶네 밤이 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쌓아 하늘로 올라..

낭송 향연 2020.03.05

세월이 가면 - 시/박인환 성우 최덕희 시낭송

성우 최덕희 시낭송 세월이 가면 @ 2016 시와 음악이 있는 밤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낭송 향연 2020.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