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09)]노래여 노래여_이근배(낭송_최현숙)
노래여 노래여 - 이근배
1.
푸른 강변(江邊)에서
피 묻은 전설(傳說)의 가슴을 씻는
내 가난한 모국어(母國語).
꽃은 밤을 밝히는 지등(紙燈)처럼
어두운 산하(山河)에 피고 있지만
이카로스의 날개치는
눈 먼 조국의 새여
너의 울고 돌아가는 신화(神話)의 길목에
핏 금진 벽(壁)은 서고
먼 산정(山頂)의 바람기에 묻어서
늙은 사공(沙工)의 노을이 흐른다.
이름하여 사랑이더라도
결코 나뉘일 수 없는 가슴에
무어라 피 묻은 전설(傳說)을 새겨두고
밤이면 문풍지(門風紙)처럼 우는 것일까
2.
차고 슬픈 자유(自由)의 저녁에
나는 달빛 목금(木琴)을 탄다
어느 날인가, 강가에서
연가(戀歌)의 꽃잎을 따서 띄워 보내고
바위처럼 캄캄히 돌아선 시간
그 미학(美學)의 물결 위에
영원처럼 오랜 조국(祖國)을 탄주(彈奏)한다
노래여
바람부는 세계(世界)의 내안(內岸)에서
눈물이 마른 나의 노래여
너는 알리라
저 피안(彼岸)의 기슭으로 배를 저어간
늙은 사공(沙工)의 안부(安否)를
그 사공(沙工)이 심은 비명(碑銘)의 나무와
거기 매어둔 피묻은 전설(傳說)을
그리고 노래여
흘러가는 강물의 어느 유역(流域)에서
풀리는 조국(祖國)의 슬픔을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
내가 띄우는 배[舟]의 의미(意味)를
노래여, 슬프도록 알리라
3.
밤을 대안(對岸)하여
날고 있는 후조(候鳥)
고요가 떠밀리는 야영(夜營)의 기슭에
병정(兵丁)의 편애(偏愛)는 잠이 든다
그때, 풀꽃들의 일화(逸話) 위에 떨어지는
푸른 별의 사변(思辨)
찢긴 날개로 피 흐르며
귀소(歸巢)하는 후조(候鳥)의 가슴에
향수(鄕愁)는 탄흔(彈痕)처럼 박혀든다
아, 오늘도 돌아 누운 산하(山河)의
외로운 초병(哨兵)이여
시방 안개와 어둠의 벌판을 지나
늙은 사공(沙工)의 등(燈)불은
어디쯤 세계(世界)의 창(窓)을 밝히는가
목마른 나무의 음성(音聲)처럼
바람에 울고 있는 노래는
강물 풀리는 저 대안(對岸)의 기슭에서
떠나간 시간(時間)의 꽃으로 피는구나.
※ 이카로스의 날개
뛰어난 건축가이며 조각가, 발명가이기도 한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을 방문하여 미노스왕의 환대 속에 지내며 왕의 시녀와의 사이에서 이카로스를 낳았다.
그런데 미노스 왕은 다이달노스가 왕비로 하여금 간음하도록 방조했다는 죄목으로 미궁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이카로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 탈출하였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함과 동시에
자만심과 과욕이나 무리는 경계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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