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당신-작가미상 - Yuni Jeon 낭송
머나먼 당신 [작가미상]
가을비 오시는 날에
습자지 같은 눈시울로 바라보겠습니다
이런 날은 조금
아파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당신은 오랜 묵음의 무게와 기억으로
내 이마를 어루만지시겠지요
옛 편지 아직 푸르고 무성하여
내겐 돌아가야 할 상처가
이토록 명랑합니다
물 이파리에 든 송사리처럼 절룩거리며
나는 어디로든 흘러가 앓아내고야
말 것 같습니다
눈을 감고도 당신의 가장자리에 깃들여
한 계절을 살아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어느 빗방울 아래
우산 없는 나날을 건너가고 계시는가요
어느 악보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나오고 계신가요
아직도 나는 비 내리는 시절에 갇혀
어떤 슬픔의 문장에도
귀 기울이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부재가 남겨둔 자리 너무 깊어서
빗소리조차 여기에 닿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리는 내게 늘 그런 것이었습니다
가을비 오시는 날에
습자지 같은 눈시울로 바라보겠습니다
이런 날은 조금 아파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아파서 남김없이
비의 육신으로 흩어져
가을가을 고통으로 스러져 가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머나먼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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