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향연

나의 시 - 서정주 (낭송/정은미 )

眞旗 언제나 2018. 2. 23. 10:15

나의 시-서정주 (낭송-정은미)

나의 시 - 서정주 

 

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성(城)안 동백(冬柏)꽃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部分)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근한 낙화(落花)가 안씨러워

줏어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 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습니다. 

쉬임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연년(年年)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줏어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모은 꽃들은 저절로 내 손에서 땅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 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